도시답사

2014 발품 팔아 몸으로 익히는 서울의 역사

2014.03.25

 [2014년  도시건축답사]  발품 팔아 몸으로 익히는 서울의 역사
 

 

2014년 새건축사협의회의 답사는 지난 100년의 변화를 몸으로 익히는 답사다.

역사도시 서울의 원 모습이 살아있는 현장에서 시작하여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 그리고 전쟁과 경제성장기를 거치며 오늘의 서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시대별 모습이 강하게 남아있는 현장을 중심으로 발품을 팔아 역사도시의 변화를 몸으로 익히고자 한다.

 

 

1. 서울의 원 모습: 낙산 정상에서 광희문까지

역사도시 서울의 원 모습이 남아있는 조선초 성곽과 현 서울의 접점을 걸으며, 서울성곽의 형성과 근현대기 변화의 현장을 답사하며 도성이 만들어진 과정을 살펴보며, 도시의 변화를 가능케한 힘과, 600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 낸 힘의 실체를 체험한다.

답사코스: 낙산 중앙공원 - 낙산 장수마을 - 낙산 이화마을 - 성곽의 안과 밖 - 동대문 - 이간수문 - 동대문디자인프랄자와 하도감터 - 김중업의 구 서산부인과의원 - 광희문

 

 

2. 대한제국기 서울의 변화의 중심

대한제국의 출범으로 500여년을 지켜온 조선의 도시구조가 어떻게 재편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답사하는 코스다.

대한제국이 경운궁(현 덕수궁)을 정궁으로 출범하면서 개설된 태평로와 환구단을 건설하면서 개설된 소공로를 중심으로 도시 구조가 어떻게 재편되었으며, 재편된 도시구조 속에서 서울의 도시와 건축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중심가로망의 답사를 통해서 살펴본다.

답사코스: 서울광장 - 태평로(현 세종로 일부) - 광화문네거리+고종황제 즉위 40년 기념비각 - 소공로 - 환구단 - 정동

 

 

3. 남산, 일제강점기 지배공간에서 시민의 공원으로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내사산중 개항과 함께 가장 심하게 원 모습이 달라진 곳이 남산이다. 도성안에 외인들의 거주가 허락되면서 남산의 북측산록에 일인들이 거주하면서 일인들의 마을과 함께 경성신사가 세워졌고, 1900년에는 을미사변에서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리는 장충단이 만들어졌지만, 곧 이은 일제강점으로 남산에는 한국강점의 심장부인 통감부/총도부가 들어섰고, 장충단에는 일인들을 위한 공원이 남산 정상에는 왜성대 공원이 조성되었다. 일인들의 남산 훼손은 지속되어 1926년에 조선신궁이 지어졌고, 1932년에는 이토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도 지어졌다. 해방으로 많은 흔적들이 지워졌지만, 아직도 어려웠던 전쟁 직후의 모습을 담고 있는 해방촌을 비롯하여 남산은 과거의 역사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해방후 우리의 손에 의해 변모된 모습을 몸에 새기고 있다.

답사코스: 퇴계로 - 적십자사 - 통감부+총독부+동본원사터 - 조선신궁 터 - 해방촌

 

 

4. 일제강점기: 식민지 자본주의의 현장

대한제국의 수도 서울이 일제강점기 식민지배와 함께 어떠한 변화를 겪게 되었는지 현장을 통해 변화된 모습을 살펴본다.

조선시대 제 1의 번화가였던 종로와 남대문로가 일제강점과 함께 새로운 상권 중심으로 성장한 혼마치(현 총무로)에서 소공로와 태평로와 어떠한 관계에 놓였으며, 서울의 공간구조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답사를 통해 살펴본다.

답사코스: 광화문 네거리 - 종로 보신각 - 남대문로 - 을지로입구 - 남대문로 - 한국은행앞 광장 - 소공로 - 서울광장 - 태평로 - 광화문 육조거리

 

 

5. 해방과 전쟁의 흔적

6.25전쟁은 서울의 600년 역사에서 서울의 모습을 가장 단시간에 가장 다른 모습으롤 변화시킨 사건이다. 현재의 서울의 모습에 남아있는 전쟁의 흔적을 살펴보고, 전쟁이 서울의 모습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답사코스: 종로2가: 관철동과 피맛길 - 서울광장과 북창동 - 삼일로와 종로3가 - 세운상가

 

 

6. 제3공화국과 장충동 그리고 남산

대한제국 출범의 계기가 되었던 을미사변 당시 순국한 충신과 열사를 제사지내기 위해 1900년에 장충단이라는 사당을 설치하면서 장충동은 근현대기 서울의 역동적인 역사의 현장이 되었다.

일제 강점기에 장충단에는 일인들의 공원과 한국 병합의 원흉인 이토히로부미를 기리는 사찰(현 신라호텔)인 박문사가 건설되었으며, 해방후에는 반공국가임을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 자유센터가 세워졌고, 민족문화의 보호 육성을 다짐하는 민족문화센터 건립계획의 일환으로 국립극장이 들어섰다.

답사코스: 광희문 - 장충체육관 + 박문사 터 - 장충단/장충공원 - 자유센터 - 국립극장

 

 

7. 경제개발과 도심재개발사업 그리고 역사도시의 변화

제1, 2차 경제개발계획의 성공적인 수행으로 이른 바 한강의 기적이라는 별칭을 갖게된 우리는 서울을 현대도시로 변모시키기 위해 새로운 사업을 시작했다. 이른바 도심재개발사업이었다. 그린벨트의 도입으로 서울의 무분별한 확장을 방지하면서 동시의 토지이용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도입한 도심재개발사업은 역사도시의 모습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했지만, 도심재개발사업은 역사도시의 모습을 빠르고 완벽하게 파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금번 답사를 통해 역사도시 서울이 도심재개발사업을 통해 어떻게 변화되었으며, 역사도시 서울의 정체성을 지키고 있는 현장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답사코스: 광화문 - 종로1가 - 소공동과 북창동 - 종로2가 - 을지로 - 명동

 

 

8. 한강의 변화

1876년 개항이후 서울과 인천을 잇는 경인철도가 건설되고, 곧이어 한강로가 개설되면서 남대문밖에서 용산에 이르는 지역이 빠르게 성장하였다. 특히 용산의 성장세가 두드러졌다. 1908년 일본군 병영의 완공으로 신시가지가 조성된 이후 일제강점기하의 용산 일대는 여러 가지 면에서 도성과 비교될 정도로 번화하였다.

1960년대 경제개발기를 거치면서 서울에서 가장 빠르게 변모한 곳은 한강의 남쪽과 북쪽이었다. 남북분단으로 한강이 물류기능을 상실하면서 폭 1km가 넘는 큰 강이 매우 한가로왔지만, 강 양안은 매우 빠르게 변모하였다. 특히 제1한강교인 한강대교는 서울의 변화를 한강이남으로 옮겨가는 매개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한강대교의 건설과 함께 강변마을이 사라지고 중지도(현 노들섬)가 만들어졌으며, 이 때 만들어진 노들섬의 활용방안을 두고 예술과 문화의 섬으로 활용하자는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난 100년 한강변에서 일어난 변화으 중심에 있는 한강대교의 북측과 남측의 모습을 살펴본다.

답사코스: 용산 - 동부이촌동 - 한강대교 - 노들섬 - 한강대교 - 흑석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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